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3대 대통령 선거 (문단 편집) === 북한의 테러 === 선거가 유례없이 치열한 지역대결의 장이 되어가던 무렵, 선거를 약 2주 앞둔 [[1987년]] [[11월 29일]] [[북한]]에 의해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발생한다. 선거 직전에 터진 북한의 잔혹한 테러에 수많은 국민들이 경악하였고, 이는 휴전 이래 지속된 [[무장공비|각종]] [[땅굴/북한|안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불안]]으로 야기된 안정논리와 반공주의가 다시 한 번 대두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때문에 일부 대중들 사이엔 김대중이나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야권 출신 인사로서의 한계 때문에 군부를 제대로 지휘할 수 없어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걱정이 돌기도 했다. 이른바 '''[[북풍]]'''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히 김대중에 대해서는 1970년대 일본에 망명해 있던 시절에 [[조총련]]을 통해 북한과 연계되었다는 의혹이 워낙 짙었기 때문에, 김대중 후보와 북한 간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김대중은 나중에 본인이 대통령이 되는 [[제15대 대통령 선거]]까지도 이 문제로 발목이 잡혀야 했고, 결국 [[김종필]]과 [[DJP연합]]을 통해 이런 이미지를 어느정도 희석시키고서야 겨우 당선되었다. 독재정권의 2인자라며 김종필을 싫어하는 김대중 지지자들도차 당시 DJP연합이 없었다면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고 했을 정도다.] 김영삼 후보도 본인은 몰라도[* 김영삼은 어머니가 북한 공비에게 피살당했기에, 김대중에게는 빨갱이 이미지를 씌웠어도 김영삼에게는 대놓고 사상이 불순하다며 몰아세울 수가 없었다. 김대중은 정치 입문 이후 향토예비군 폐지, 남북교류 주장, 4대국 보장론 등을 주장하며 북한에 유화적인 성향을 보여준 사례가 있어서 6.25 전쟁때 인민군에게 죽을 뻔했다는 말만으로는 김대중과 북한 간에 커넥션이 있었을 거라는 당시 대중의 의심을 해소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대중과 같은 당 소속이었으니 결국 대통령이 되면 김대중에게 이용당하여 북한에 좋은 일 하는 것 아니냔 시선도 있었다. 나중에는 김대중 후보가 [[총풍 사건|북한에게 부탁]]하여 KAL기 테러를 일으켰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기 시작하면서, 대선 분위기는 안보를 강조하던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어갔다. 이로 인해서 보수 지지자들이 노태우로 결집하면서 김종필이 표 손해를 많이 봤고, 김영삼도 12대 총선과 비교해보면 TK 지역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는 등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